잊혀지지 않는 스리랑카 성지에서의 한 장면

불치사에서

법륭사 도량에 비 내리는 소리와 함께 가을이 더욱 깊어가고 있다. 용강로처럼 달구던 햇볕도 가을 앞에서는 기운을 잃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파란 하늘 아래서 이리저리 떨어지는 나뭇잎들 늘 기다려지는 계절이 왔다.

지난 달 와치싸라스님의 초청으로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갔다. 그때의 아름다웠던 이야기들을 시간이 있을 때 마다 한 도막씩 꺼내 볼까 한다. 이번 스리랑카 성지순례는 아홉명이다. 인생길에서 저 마다 마음속에 한 가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오늘은 캔디 불치사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스리랑카는 많은 슬픔을 간직한 나라이다. 서남아시아 인도 밑 작은 섬나라인데 아시아로 향하는 중요한 요충지가 되

서 포루투칼, 네델란드, 영국에 400여년 식민지를 살았다. 지배를 했던 나라들은 대부분 카톨릭이나 기독교 국가인 것을 보면 스리랑카가 그 오랜 역사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불가사의 한 일이다.

여기에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치사에 대한 스리랑카 인들의 신심이 있다. 인도 쿠시나가라에서 부처님의 다비를 치르고 장작더미위에서 치아사리를 발견했다. 인도의 여러 왕국에서 모셔져 오다가 스리랑카로 전해졌다. 불치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자 일 년에 한번 씩 열리는 치아사리 이운 행사 또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축제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리일행은 저녁시간에 혼잡한 캔디시내를 들어섰다. 좁은 도로 오래된 버스들 사이를 달리고 있는 장면은 세월을 거슬러 오래된 영화 필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시간들을 너무도 좋아 한다. 잠시 후 불치사에 도착했다. 무장한 경비원이 철문을 열어 주었다. 예전에 불치사도 여러 번의 테러 위협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 절에 비해서 경비가 삼엄했다. 사실 이 길은 스님들이 이용하는 불치사 뒷문이라고 한다. 와치싸라스님의 배려로 편안하게 올라왔다.

버스에서 내려서 큰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안내 되었다. 노란색 백열전구가 희미하게 불빛을 비추고 고전적인 의자에 앉아 있으니 밖은 곧 어두워졌다. 와치싸라스님은 오가며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치아사리 참배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서로의 긴장된 얼굴을 보며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한 가족이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스리랑카 노보살과 청년 그리고 아이들 셋 와

치싸라스님이 수다 엄마와 형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법륭사 방하에서 일하는 수다는 신도들이 늘 안타까워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를 보지 못한지가 7년이나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다네 가족은 부처님 치아사리에 공양할 꽃과 차를 정성스럽게 준비해 왔다. 우리는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한 사람 한 사람 받아서 소중하게 들었다.

드디어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참배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낮 동안 따뜻하게 덥힌 돌을 밟으며 한걸음 한걸음을 걷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자 북과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향내음과 하얀색 옷 입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 일행은 안내자에 말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옮겨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긴 계단에 멈춰서 있다. 아홉명 모두 말이 없다 하얀색 옷과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두 손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저 넘어 방에는 부처님이 계실 것만 같다. 우리를 반기며 따뜻한 말 한마디씩 할 것만 같다. 잠시의 기다림이 끝나고 다시 출발이다. 점점 더 굴속 같은 법당을 걷고 있다. 그 끝 황금색 거룩한 치아사리탑이 나타났다. 한 번의 반배 그 짧은 시간을 끝으로 부처님과 또 헤어져야만 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치아사리탑을 시봉하고 있는 스님이 눈치를 준다. 어서가라고.......그래도 행복했다. 오랜 승려생활 끝에 나의 본사인 석가모니불을 만나는 것 같았다 아무 말씀은 없었다. 그냥 그대로 살라고 신도분들은 눈물을 흘렸다. 밖으로 눈물 흘리지 않는 신도들도 마음으로 더 많이 흘렸을 것이다.

더 아프게

참배가 끝나고 불치사 대통령 취임식 자리를 둘러보았다. 굳게 쇠사슬로 잠긴 것을 열어주며 들어가 보라고 했다. 와치싸라스님이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곳에서 국민과 부처님께 업무를 성실히 수행 할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불치사의 정원과 작은 집들은 아름다웠다. 본래는 스리랑카 왕궁이었는데 불교에 시주해서 지금은 치아사리를 모신 절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참배를 끝나고 다시 수다네 가족을 만났다. 오늘 저녁에 처음 만나고 또 이별이다. 수다가족은 우리에게 조그만 선물을 건네주었다. 회장님은 한사람 한사람 안아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밤은 더 깊어가고 있었다. 부처님은 오늘 일어난 이 모든 만남

과 이별의 삶의 모습들을 치아사리의 또다른 법문으로 해 주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