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스리랑카 성지에서의 한 장면

시기리아

스리랑카에 도착한 첫 날은 거의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강행군 했다. 노보살님들과

회장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다. 이 먼 나라를 나만을 믿고 따라온 것이라 생각하니

고맙고 마음속 깊은 울림이 남는다.

첫 날 저녁 어두움이 짓게 깔린 저녁 호텔에 도착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호텔

종업원 이 물수건과 따뜻한 홍차 한잔을 주었다. 물수건으로 먼지 묻은 손과 얼굴을

닦고 따뜻한 차를 마시니 피곤이 풀리고 맑은 기분이 든다. 스리랑카에서는 호텔에

도착 할 때 마다 물수건과 차를 주었는데 늘 큰 접대를 받는 손님처럼 좋았다.

배정 받은 방에다 짐을 가져다 놓고 호텔 로비로 나갔다. 모두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라 그런지 훨씬 밝아 보인다.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현학스님과 신

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리랑카 깊은 숲속에 있는 이 호텔 어디에선

가 피리 소리가 들린다. 호텔 정원높은 원두막에서 노인 한분이 피리를 불고 있다.

고요한 어둠속에 들리는 피리소리는 슬프고도 편안하게 귀가를 울리었다. 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첫 날 밤 깊은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기가 참 힘든 사람이다. 예전

에는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했는데 병원에서는 저혈압이 있는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

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성지순례 여행 중에는 나는 열심히도 일찍 일어났다. 현

학스님은 아마 나를 아침형 사람으로 알았을 것 같다.

이 날 아침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현학스님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한걸음 한걸음씩

걸으면서 호수가에 다가 갔다. 호수를 바라보다가 뒤편의 산을 보니 부처님이 편안하

게 누워 있는 와불 모양의 산을 보게 되었다. 그 잔잔한 호수가에 햇살을 비추며 해

가 떠오르고 있었다. 스리랑카가 부처님의 나라라고 하더니 어느 곳에 가더라도 부처

님과 사리탑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 해를 맞이하고 돌아오는 길, 나무들 사이로 오

렌지 색 가사를 입은 와치싸라 스님이 보였다. 스님도 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깊은 생

각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스님의 걸음걸이와 모습은 평화롭고 거룩해

보였다.

오늘은 사자산 시기리아에 올라가는 여정이다. 와치싸라스님이 오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 힘드니 아침을 도시락으로 먹고 서둘러 올라가자고 했다. 8시쯤 시기리

아에 도착하니 우리 버스가 첫 방문인 것 같다. 시기리아는 스리랑카 고대 도시로 숲

속 가운데 있는 370미터 높이의 화강암 봉우리에 세워졌다. 477년경 카사파왕자가

아버지 왕을 죽이고 복수를 두려워 해 이곳으로 옮겨와 바위산 위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오래가지 못하고 카사파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한동안 깊은 역사에 묻어 버렸다.

세상 이야기의 희비는 돌고 돈다고 하더니 그 비운이 있었던 이 바위 도시는 스리랑

카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유적지가 되었고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우리 일행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걸음을 옮겼다. 시기리아에 올라가는 곳곳에서 와치

싸라스님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설

명보다도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이 더 깊었다.

시기리아에 오르던 길은 점점 좁아지고 이제 나혼자만 겨우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

다. 노보살님과 신도 몇 분은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와치싸라스님과 현학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바위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바위산은 한 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

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멀리 보이는 푸른 정글은 한 참 아래로 보인다.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옆구리에 끼었다. 예전에 모자를 잃

어버려서 벼르고 벼르다 산 이 모자를 바람에 날려 보낼 수 없다는 집착이 가득하다.

바람은 더욱 불고 앞서간 스님들은 보이지 않고 모자를 붙들고 있는데 발밑은 낭떠러

지이다. 한순간 두려움이 몰려 왔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가 떠났다. 노보살님은 자기

보다도 더 나를 더 걱정해 주고 있다. 드디어 시기리아 정상에 올랐다.

끝없는 하늘이다. 발밑은 끝없는 숲이다. 그것뿐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자연

속에 내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담아 넣었다. 사리자 보살님은 그 아픈 다리를 가지고

이 산을 올라 왔다. 성도재일 부처님을 향한 천배의 절을 끝없이 할 때가 어제일 같

은데 많이 늙으셨다. 그래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씩씩하게 이 길을 오른 것이다.

모두가 사리자보살님을 축하해 주었다. 내려 오는 길은 너무도 쉽게 쉽게 내려왔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며 즐거워했다.

산을 오르려면 몸이든 짐이든 가벼워야 한다. 삶을 걸어가는 것도 그와 같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의 시원함과 달콤함 속에서 욕심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은 가벼움을 느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