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스리랑카 성지에서의 한 장면 - 하프탈레
 
 
 

진공 현여(법륭사 주지)
 
 

끝없는 차밭 하프탈레

어제는 하루 종일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차밭을 보며

굽이굽이 언덕을 돌아서 늦은 저녁 호텔에 들어왔다.

신도들 모두 지쳐 간단한 저녁공양 후

헤어져 곧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기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호텔 옆으로는 기차 길이 있었는데

간혹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천천히 모퉁이를 지나가는 낡은 기차를 보니 정겹고

다음에는 이 기차를 타고 여기에 오고 싶어졌다.

스리랑카 중요한 성지순례가 끝나고

오늘 부터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여정이다.

그래도 곳곳에는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어서

스리랑카가 부처님과 얼마나 가까운 나라인가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와치싸라스님은 조금 더 가면

스님의 고향마을이라고 했다.

길옆에 작은 병원을 보았는데

스님이 태어난 곳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시골병원은 100년쯤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후진국으로 생각하는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 시절 서구의 의학을 받아들여서

높은 수준의 의료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버스를 너무 오래 타서 작은 차집에 들려서

따뜻한 홍차를 마셨다.

그곳에서 와치싸라스님의 누나를 만났다.

신도들 모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스님도 오랜만에 누나를 만났다고 한다.

스님도 어렸을 적에 출가하여 절에서 살아서

형제들과 큰 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속에 약간의 애뜻함이 느껴졌다.

마두강의 작은 절 
 

어제는 바닷가 호텔에서 하루 밤을 잤다.

넘실대는 파도와 넓은 인도양 바다 야자나무 아래서

과일 주스를 마시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신도들의 모든 근심 걱정도 이 바다에 다 던져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바다의 푸른 모습과 걸림 없는 모습,

바다 위 하늘 만 보아도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된다.

성지순례 며칠이 지나고 나니 생각이 줄어들고

비움이 느껴진다.

마두강가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배를 탔다.

스리랑카 남부 해안에 위치한 마두강에는

람사르 습지 협약에서 보호하는 약 277만평의

방대한 넓이의 자연 습지로

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영상촬영으로 동행했던 조규준은 몸살감기로

버스에서 쉬기로 하고 신도들 모두 함께 배에 올랐다.

배가 출발하면서 심하게 매연을 뿜어내니

모두들 입을 막고 힘들어 했다.

더욱이 회장님은 배 멀미에다

독한 매연냄새에 고통스러워했다.

다행히 회장님은 지나가는 배에 옮겨타서

다시 부두로 들어갔다.

마두강 안에는 맹글로브 나무가

강물에 담겨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맹그로브 뿌리는 물고기들 수중생물이 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처음 보는 맹그로브 숲을 보며

좁은 수로를 통과해서 넓은 강에 이르렀다.

마두강 가운데 이르니 얼마나 넓은지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배는 천천히 유유하게 물길을 가르며 작은 섬에 닿았다.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다음의 세상으로 간 듯 했다.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 갈 때도

이와 같이 편안하다면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섬에는 작은 절에 스님 한분이 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절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을 밟으며 법당을 향했다.

절 도량에는 큰 보리수 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법당을 둘러쌓고 있었다.

어둑한 법당 안에는 부처님 한분이

단정하게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조용히 참배를 올렸다.

그리고 절 스님이 머무는 방에 들어갔다.

몸이 바짝 마르고 가사를 입은 스님은

신도 한분 한분에게 정성스럽게 기도를 해주시고

손목에 기도실을 묶어 주었다.

어떤 말도 없었다.

인생의 답도 없었다.

거룩한 시간이었다.